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맨발의 겐 (문단 편집) === 연재 당시의 상황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akazawakeigi.jpg|width=100%]]}}}|| || '''{{{#fff 연재 당시의}}} [[나카자와 케이지|{{{#fff 나카자와 케이지}}}]]''' || >기자: <맨발의 겐>을 그릴 당시만 해도 천황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글, 또는 원폭을 다룬 글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텐데. > >[[나카자와 케이지]]: 나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원폭을 당했다. 원폭이 떨어진 날, 부친이랑 누님, 동생들은 다 타서 죽고, 그때 살아남은 모친은 그 뒤 소화 41년(1966)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치른 뒤 재장에 뼈를 받으러 갔더니, 몽땅 타버려 뼈 조각 하나 남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원폭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원폭의 위험성을 온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곧 원폭 이후 낙진으로 검은 비가 내렸던 히로시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첫 작품 <검은 비를 맞아서>(1968)를 썼다. 큰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당한 뒤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을 때까지 반년이나 걸렸지만, 좋은 편집장을 만나 출판하게 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출판사는 당시 주로 에로틱한 내용의 책을 내고 있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3817|#]] 1973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1년간 연재했다가 이후 좌파계 시사잡지《시민》, [[일본 공산당]] 기관지《문화평론》, 일본교직원조합 기관지《교육평론》등의 여러 재야잡지를 거치면서 1987년까지 연재되었다. 때문에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담은 만화가 점프에서 연재됐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한다. 당시에도 점프는 지금과 같은 [[앙케이트]] 지상주의였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독자의 평판도 찬반양론으로 나눠졌고, 반드시 인기가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작품을 읽은 편집장은 울면서 "더 그려줘"라고 말하며 추가 집필을 의뢰했다고 한다.[[https://twitter.com/KADOKAWA_denshi/status/1423419296504422404?t=PKMQo6yiyRyFgBGb-yamKA&s=19|#]] 이 작품은 당시 점프 편집장이 신경 써서 그리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하며, 예외적으로 이 편집장이 이동할 때까지 연재를 계속하게 했다고 한다. 덧붙여서 이 편집장은 당시의 안보 투쟁 정세에서 사내에서의 좌편향 운동에는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기자: <소년점프> 편집장이 <맨발의 겐> 연재를 약속했을 때 심정을 소회하면? > >나카자와 케이지: <소년점프>의 나가노 다다스씨는 '네가 쓰고 싶은 대로 페이지 수를 줄 거고, 또 쓰고 싶은 대로 연수를 줄 테니 마음 놓고 써봐라'고 했다. '''그는 '<맨발의 겐>은 <소년점프>의 [[양심]]을 걸고 연재하겠다'고 했다.''' 주마다 작품을 써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재 후 <소년점프> 애독자 수가 훨씬 불어나, 결과적으로 소년잡지 가운데 제일 많은 부수를 자랑하게 됐다. 보람 있게 일한 날들이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3817|#]] 1975년 5월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원고를 기초로 초분샤(汐文社)에서 출판된 전4권의 [[단행본]]은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단행본 4권까지의 부분이 주간 소년 점프에서 1년 이상 연재가 이어진 것은 1970년 [[전후]] 시대 상황에서 사회성 있는 주제가 아이들에게 먹힌 것이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지만 1971년 당시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는 [[그라비아]] 페이지에 당시 뜨거웠던 [[나리타 투쟁]]을 취재해, 소년 행동대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당시의 정부나 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나 작품을 싣는 것은 출판사에 있어서는 위험도 있지만, 기회이기도 한 것이, 당시의 시대 상황이었다. '맨발의 겐'을 연재하기 앞서 나카자와는 1970년에 [[오키나와]]의 기지 문제를 테마로 한 '오키나와'를 연재하고 있는데, 이 때도 인기가 돌기 직전에 제동이 걸렸던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후 작가 나카자와와 점프 편집자의 정열 속에서 맨발의 겐은 태어났다. 연재 당시의 작가 나카자와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특히 '저속잡지'라고 하는 곳을 노렸습니다. 저속이라고 하는 것은, 저속이라고 하는 것 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것은 재미있는 만화입니다라고 아이가 읽어 줍니다. 읽고 뭔가 하나라도 원폭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말이죠, 예를 들어 '피카'라는 말이 원폭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그런 것이라도 좋습니다.[[https://intojapanwaraku.com/culture/95483/|#]] 1968년에 창간된 주간 소년 점프는, 경합지에 비해 '저속잡지'로서 비판의 화살에 서는 일이 많은 잡지였다. 1971년에는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이 공격 대상으로 거론된 것을 시작으로, 소년 점프는 '부모가 자녀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만화 잡지'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잡지였기에 나카자와는 전력을 기울여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단지, 연재 종료 후에 '맨발의 겐'은 인기가 없어서 그대로 잊혀져 버릴 것 같았다. 당시는 만화가 잡지 연재 후에 단행본화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또한 당시 정부에도 비판적인 '맨발의 겐'은 좀처럼 단행본화가 어려운 작품이었다. 이 때, 작품을 묻히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초분샤에서 기획을 만든 것이 평론가 이시코 쥰(石子順)이다. 1960년대부터 만화를 평론 주제로 다룬 선구적 업적이 있는 이시코는 정치적으로는 [[일본 공산당]]계 문화인이었다. 그 관계로 당시는 일본 공산당계의 출판사인 '초분샤'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2013년에 매각되어 현재는 [[KADOKAWA]] 그룹의 출판사가 됐다.] 이렇게 해서 1975년 5월에 '맨발의 겐'의 단행본은 출판되었지만,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일본은 만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엄청나게 강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맨발의 겐은 일본 공산당의 논단지 문화평론에도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단행본이 출간될 당시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반전과 평화, 정부 비판도 포함하는 맨발의 겐은 일본 공산당이나 주변에 몸담고 있는 [[좌파]] 인사들이 환영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만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속어]]를 말하거나, 여러가지 난폭한 표현이 많은 '맨발의 겐'은 출판사 고객층에는 전혀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여 갔다. 그런데 맨발의 겐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극우들이 싫어하는 [[좌익]] 만화'로 유명한 '맨발의 겐'이지만, 당시 맨발의 겐의 보급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공]], [[보수]], [[우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좌, 우익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맨발의 겐을 알리기 위해 보급 운동에 참여했다. 보급 운동이 계속 진행되고 당시의 [[후지테레비]] 계열 낮방송 '3시의 당신'에서 맨발의 겐이 홍보 방송된다. 이때부터 출반사인 '초분샤'의 책 주문이 쇄도해 '맨발의 겐'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당시 세계적인 문학가 [[오에 겐자부로]]가 극찬을 하기도 했다. 작품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해 '맨발의 겐'의 보급을 앞장섰던 니시카와 우치(西河内)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맨발의 겐이 보급된 것은 작품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상 차이에도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한 성과라고 할 수 있죠."[[https://intojapanwaraku.com/culture/9548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